티스토리 뷰

짧은&조각글/배구

[카게히나] 숨기다.

이지덤 2017. 1. 15. 05:14

 

*약간의 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네타본 따라가나봐요(대체

*근데 망상이 또 들어가서 한국기준 연재분과 조금 매우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절레

 

 

 

 

높디높은 벽.

벽을 뚫을 수 있는 공을 올려주는 너.

저 벽 너머가 보이지 않더라도 확실히 보이는 건 하나.

9번 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

넌 알아?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는 걸.

 

짝사랑.

[명사] 한쪽만 상대편을 사랑하는 일.

 

 

 

 

 

 

 

 

 

숨기다.

 

W. 독일젊은이

 

 

 

 

 

 

 

 

 

 

 

 

*

체육관에서 공 튀기는 소리는 여느때처럼 울리고 있고 나는 여느때처럼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난 어느날부터 널 좋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까부터 연습하는게 연습이 아닌가보다. 플라잉을 할 때도, 블로킹을 할 때도심지어 스파이크를 위해 도약하는 그 순간에도 너만 보이고 눈에 들어와 나갈줄을 모른다. 며칠간 그런적이 한두번이 아닌데다가 그럴때마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닌것같이 자그맣게, 아무도 모르게 심장이 반응했다. 체육관 내 분위기는 평소와 같다. 다를것 없는 코트울림있는 공떨어지는 소리, 연습과 연습 사이의 쉬는시간, 연습하는 사람들 마저 다른 부분 없이 평소와 꼭 닮았다. 하지만 나 만큼은 조금은 다른 분위기다

너를 좋아한다고 깨닫고 알아내기까지 걸린 시간이 5. 가까이서 보면 길고 멀리서 보면 짧은 시간동안 겉으로는 평소 같은 척, 다르게 보이지 않으려고 꽤나 애썼던거 같다. 지역대표 선발전이 있기 직전 배구연습 이후로 너가 나에게 평소같이 다가오지 않았다아니, 오히려 너에게서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있다면 나에게 변화가 온 것 일것이다.

변화가 온 첫 날은 도통 알 것이 없었다. 너는 그대로인데 내가 느끼는 너는 어째서 다른걸까. 경기를 할 때나 스파이크를 칠 때나 반응했던 심장이 너를 보면서도 느껴져서 좀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런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상대가 너라서인걸까.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평소처럼 토스 올려달라고 달려들었었다. 더 밝은 척, 해맑은 척 하다가 이 어중간한 감정을 들키면 안되니까. 그러니까 의식하지 않으려 좋아하는 배구에 더 힘을 들이고 연습 또 연습을 강행했다.

그런 나날이 지나가고 알수 없는 감정이 좋아함, 짝사랑이란걸 깨닫게 된 계기는 오후 연습이 끝난 해가 저문 늦은 오후, 너와 내가 함께 걸어가는 하교길. 우리는 다음날의 선발전을 대비하는 주먹을 맞대었다. 사소한 맞댐에 두근거리며 진정이 되지 않던 심장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이것이 계기다. 내가 널 좋아한다, 짝사랑이구나.를 알게 된 계기

너는 여느 때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난 아니다. 너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알게 된 이상 나는 너에게 전처럼 토스를 올려달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아니, 사실은 내가 겁많은 겁쟁이라 다가갈 수 없을것같다. 선발전 이후 연습에서 너와 호흡을 맞출때는 평소와 달라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내 노력이 가상한 것인지 너는 여전히 모르고 있는것같다. 내가 나 혼자만의 감정을 알기 전처럼 나에게 높은 벽을 뚫을 수 있는 토스를 올려줄 뿐이고 나는 그 세트업 된 공을 칠 뿐이다. 그 뿐이다. 너와 나의 관계가 그 정도라고 생각했고 저것이 일상이었던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오류난 감정이 생겼다. 너를 좋아한다는 감정. 이젠 아무렇지 않았던 스트레칭 마저 네 손길에 작게 움찔하고 연습중이 아닌 학교에서도 스치듯 지나가는 네 몸냄새에 내 신경이 자극 당한 듯 가만있질 못한다. 그만큼 나는 너를,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좋아하고 있다. 연습 이후 유스 합숙에 간 너가 미치도록 보고싶다. 무작정 강해지려 온 이곳에선 공이나 줍고만 있다. 손이 심심해 미칠것같아. 네가 토스 올려준 공을 치고 싶어. 절실하다 진짜. 내가 느끼기에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너가 간 유스 합숙 기간이 짧다는 것. 이제 볼보이 생활이 끝이 나면 너를 볼 수 있겠지. 야속한 심장은 너가 보고 싶은 지 좋아하는 배구공을 만지고, 연습하는 모습을 봐도 반응해주지 않는다. 너가 없는, 너와 함께 하지 않는 배구는 심장이 뛰어주지 않는다. 많이 보고 싶어, 카게야마.

 

 

 

 

 

 

 

 

 

*

날이 흘러 드디어 기다리던 너를 만나게 되었다. 그 전엔 보여도 그만, 안 보여도 그만인 너였는데. 어쩌다 내 눈에 한번도 안 밟히면 보고싶고 배구를 하지 않아도 너와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된 걸까. 파트너라는 이름 아래 함께 호흡맞추고 서로에게 맞춰주다가 너에게 감정이 생긴걸까.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감정에 대해 내가 느끼는 슬픈 점은 너와 함께 하지 못하는 배구보다 너가 날 좋아하지 않을거란 확신이다. 언제부터 넌 내 안에서 그렇게 큰 존재로 자리를 잡은 것일까

너가 보인 첫날부터 눈에 띄게 널 피해다녔다. 너 아닌 남들 앞에서는 평소같이, 아무일 없단듯이 연습에 연습을 했고 쉬는 시간에도 너를 피해 있었다. 피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너를 대하는게 어려워졌다. 아니면 내심 알아주길 바라고 피한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좋아해서, 너가 그걸 알아주길 바라며 피한것일지도 모른다널 좋아하는 날 알아줘. 너가 올려주는 토스도 이젠 기쁘게 칠 수가 없다. 내가 겁쟁이라, 자꾸만 널 피하고 싶고 눈앞에 없으면 보고싶고 있으면 보고 싶지않고 그렇네. 이기적이다라는 말지금 내 앞에서 스파이크가 시원찮아 잔소리를 늘어놓는 너가 보고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안 보면 보고싶어지고. 그걸 표현하는 말일까? 네 잔소리를 듣다가 연습시간이 끝나버렸다. 답답한 마음이 체육관을 나가면 사그라질까 싶어 뭔가 말하려는 듯 들썩이던 네 입술을 마지막으로 체육관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보고 싶던 너였는데 막상 너가 눈앞에 있으니 자꾸만 피하고 싶어진다. 혼란스럽다. 저 혼자 상대쪽을 사랑하는 일을 짝사랑이라 한다고 했다. 바깥 바람을 쐬면 생각이 정리될거라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아닌가보다. 그냥 찬 공기만이 내 몸을 감싸고 내 정신을 빼먹어 버리고 있다. 그래서 쭈뼛거리며 내 옆에 온 너를 알아채지 못했다.

 

"히나타."

 

"....? 너 언제 여기에..."

 

"너 왜 나 피하는거냐."

 

정말 미쳐버릴것같다. 너를 마주보고 있으니 미친듯이 심장이 발악하듯 뛰네너의 한마디로 내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다. 카게야마는 눈치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카게야마가 알 정도로 내가 눈에 띄게 피한것일거다. 그런데 왜 내 앞에 서있는 너도 표정이 복잡한걸까. 내가 널 좋아하는걸 너도 알아버린걸까? 요 며칠이 제일 혼란스러웠는데 네가 던진 한마디에 마음정리를 위해 나온건데 정리는 무슨, 불규칙하게 흩날리는 봄의 벚꽃 같아만졌다. 대답을 회피하려 너를 돌아 들어가려는데 잡힌 팔목에 의해 몸이 돌려진다하지마. 나 보지마 카게야마. 너때문에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잖아. 이 손 놔줘 입안에서 발악하는 말들이다. 사실 다 반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나를 잡고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너였으면 좋겠고 잡은 손을 놓지않고 끌어 날 안아줬으면 하고 너에게 잡힌 이 순간이 영원히 이 상태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다.

 

"좋아해."

 

내가 원한 고백 분위기는 이게 아니었는데, 너무 순간적이었다. 몇날며칠을 속으로 되내였던 말이 드디어 나왔다. 고백이란거, 정말 한 순간이네. 한 단어를 들은 너의 눈은 커지고 알수없는 표정으로 날 응시했다. 그 시선이 무섭고 두려워 고개 돌려 맞보던 시선을 없앴다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어. 좀 더 늦게 말 할껄, 너와의 관계는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까지 이어가길 바랐는데. 내 욕심이 컸던거지? 그런거지? 어색한 관계가 되고 싶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전처럼 토스 올려달라고도, 본 연습 이후의 연습 조차 바랄 수 없게 되었다. 아무말없이 쳐다보지마. 내 발언이 후회 되잖아. 여전히 내 팔목은 너의 길고 쭉뻗은 예쁜 듯 멋진 손안에 있고 내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마냥 빨개져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들켰지만 조금이라도 늦은 대답을 듣기 위해. 넌 아직 내 앞에 서서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있겠지.

고백하다, 라는 말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하는 것 이라고 들었다. 여러 의미의 고백도 있지만 나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감춰놨던 것을 다 들추어 말해버렸다. 너의 대답이 궁금하다. 마저 대답을 안해주어 답답해 죽겠는데 마음 한 켠에서는 바라지 않고 있다. 너의 대답이 거절하는 말이 나올까봐. 선선하게 바람이 불고 있는 체육관 앞에서 지금 순간이 아까처럼 멈춰버렸으면 한다. 그냥 널 좋아하기 전으로 돌아가 즐겁게 재밌게 배구 하고 싶어.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사이 너를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너의 입은 움직이고 있었나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가 이렇게 눈을 크게 뜬 적이 없다. 어렸을 적 안 그래도 큰 눈 더 커지면 무섭다는 말을 들었어서. 근데 지금 너의 입에서, 카게야마 입에서, 어쩌면 현재는 배구보다 좋아하는 사람 입에서 거절이 아닌 대답이 나와서 좀 많이 놀랐다. 내가 지금 거절 당한 게 아니야? 무서워서 안 보려고 그랬는데 홀린듯이 고갤 들어 너의 얼굴을 봤다. 처음보는 얼굴이네. 너는 웃고 있고 너의 웃는 얼굴은 꽤 잘 어울렸다. 이 정도로 잘 어울릴 줄 몰랐는데. 말하고 나면 더 기피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웃으면 기피는 무슨 더 좋아하고 싶어지잖아. 확답을 못 들었는데. 혼자서 김칫국 마시는 거 아닌가 싶어 너에게 묻는다. 제발 좋아한다고 해줘. 너랑 행복하고 싶어.

 

"....너도 날 좋아하는거야?"

 

"보게냐. 좋아하니까 이렇게 말하지."

 

잠시 무표정이었다가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는 너의 웃음은 언제 봐도 멋지다. 너에게 많이 고맙다. 어렴풋이 따라 웃을 수 있게 해줘서.

 

 

 

'짧은&조각글 > 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이와]너의 생일에  (0) 2016.07.21
[하이큐 짧은글] 켄쿠로-사망 플래그  (0) 2015.08.1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